책이야기
[답변] 지금껏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역겨웠던 작품
·9. 11.·조회 71·댓글 3·좋아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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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답장을 하려다가 글이 너무 길어져서 따로 게시물을 올립니다.
※다소 역겨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글이 매우 깁니다.
부주전상서는 한국에 피임 기구와 피임 수술이 본격적으로 보급화되던 시절에 쓰인 작품으로 박정희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을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여기까지는 딱히 문제 없어 보입니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소설의 역할이니까요.
내용은 단순합니다. 아내를 죽인 죄로 동물원에 갇힌 화자가 (제 기억상으론) 자신의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화자의 아내는 친구의 피임 시술을 돕고 홍보하는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주인공은 피임과 피임 시술 자체를 굉장히 못마땅해 하는데 나중에 아내가 루프 시술을 받자 분개한 나머지 아내의 질에 손을 집어넣어 피임기구를 억지로 빼 아내가 과다출혈로 사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줄거리부터 충격적이죠.
효과적인 비판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이 소설이 역겹다고 한 이유는 단순히 가족계획사업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사상을 정당화하는 모습과 작가가 보여주는 강약약강식 태도 때문입니다.
작중 화자는 아내를 죽였음에도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아내를 죽임으로써 피임으로 태어나지 못할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이 부분은 특히 아내의 피임기구를 자궁에서 억지로 빼낸 이후의 장면에서 두드러집니다. 바로 옆에서 아내가 자신 때문에 죽었는데 주인공은 잠깐 놀라고 미안해하다가 아내의 질에서 울컥울컥 피가 흐르는 걸 보며 오히려 무언가 뻥 뚫린 듯한 쾌감을 느낍니다. 이 부분을 읽고 어이가 가출하다 못해 한숨만 나왔습니다.
일차적으로 피임에 대한 화자의 극도의 거부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 거부감이 도덕적 측면에서의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남성성이 거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나온 것처럼 묘사되어 있기에 상당히 불쾌합니다. 남성성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남성성'의 개념이 너무 역겨워서 그렇습니다. 심연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찐따남의 사상을 들여다보는 기분입니다.
아내가 피임 시술을 받자 화자가 분노를 느낀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수술을 받기 위해 외간 남자인 의사에게 성기를 보여주었을 것이며 의사가 기구를 삽입하며 화자조차 만져보지 못한 그녀의 질에 손가락을 넣었을 것이라는 질투심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뭐 산부인과에 가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되겠네요.
두 번째는 자신이 정상적인 남성으로서 대를 잇기 위해 자손을 남겨야 마땅한데 그런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아내가 멋대로 박탈하였다고 느껴서입니다. 물론 이 두 이유 말고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어쩌고 하는 논리도 들이미는데 이것 또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논리에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읽는 이에게 동조는커녕 거부감만 들게 만들고 본래의 의도조차 전달에 실패했으니 이건 소설이기 이전에 선전물로서도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택한 비판 방식도 상당히 문제적입니다. 부주전상서의 화자는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그 제도를 뜯어고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만만한 여성에게 분풀이를 합니다. 이런 식의 찌질한 강약약강 내리갈굼 서사는 남정현의 다른 소설에서도 묘사가 됩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작가가 쓴 반미소설이 있는데, 미군 탱크에 깔려 죽은 여학생의 복수를 위해서 한 남자가 미군의 아내를 강간하는 내용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지 않나요? 일단 문학에 이념이 진하게 묻어서 본질이 주객전도 된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저는 문학의 가장 큰 본질은 예술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이나 사상도 중요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작가 본인의 마인드에 깔린 여성혐오를 소설에 덕지덕지 드러내는 게 정말 불쾌합니다.. 시대상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그 시대 다른 남성 작가들에 비해 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꽤나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작가인데 자신이 생각한 정의가 일부에게는 폭력이라는 것을 작가는 몰랐나 봅니다.
아무튼 부주전상서는 한국 현대문학사 JOAT 문학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읽다가 이렇게까지 어이없고 화나는 작품은 처음이라 몇 년 전에 읽었는데도 아직까지 내용이 생생합니다.
댓글 3
·9. 11.
어우........ 진짜 역겨워서 글 요약하시는것도 힘드셨을텐데, 요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겹네요... 렬루다가....... 와....... JOAT 인정
·9. 11.
어우…..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 11.
ㅎㄷ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