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완독

독서 메모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p.42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 p.43 📌며칠 전부터 누군가 자꾸 사물의 입을 찢어, 각을 벌려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기 전까진 말이다. p.62 📌만일 부엌 쓰레기통을 비뚤게 놓은 사람과 '이 사람'이 같다면, 그가 사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낸 신호는 '이 집의 뭔가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우리에게 하려는 말은 '당신들이 잘못됐다'는 거였다. p.63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많은 위안이 되니까. p.78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p.86 📌만약 그녀가 정말 '우리집'을 가져간 거라면 대체 왜 그런 건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p.87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p.231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p.253 📎서평 •1)홈 파티: 자본주의가 만든 보이지 않는 계급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 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영화 《완벽한 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2)숲속 작은 집: 자본주의가 야기한 노골적인 계급화를 보여준다. 3)좋은 이웃: 화폐 가치의 변화에 따라 변해가는 주변과 나,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는 비교와 자각을 그린다. 4)이물감: 내가 남이라 치부했던 비루한 모습이 사실은 내 안에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의 불편함을 다룬다. 5)레몬케이크: 자본과 철저하게 엮여버린 돌봄의 현실을 보여준다. 6)안녕이라 그랬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최소한의 다정함을 말한다. 7)빗방울처럼: 사람과 돈으로 인해 상처 입지만, 마침내 사람의 온기로 위로받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탁월한 '공간 설정'이다. '홈 파티'의 '집', '숲속 작은 집'의 '숙소', '안녕이라 그랬어'의 '온라인 화상 영어 공간' 등이 그러하다. 우리 삶과 밀접한 이 평범한 무대들은 자본과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안녕'이라는 인사가 비로소 깊은 위로와 필요함으로 다가온다. 단편들의 치밀한 배치 또한 돋보인다. 앞선 두 편의 단편이 자본주의적 계급을 정면으로 다루며 포문을 열고, 중반부로 갈수록 타인과의 비교와 내면의 억눌림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에 이르면, 돈보다는 인간 자체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물론 주요 인물들의 관계 역시 자본으로 엮여 있지만.) 그리고 마지막 단편에 이르러 다시 자본과 밀접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결국 직전의 이야기처럼 '마침내 다정함'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게 이렇게 전달되었다. 이야기는 '돈과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과 돈'의 이야기, 즉 돈보다 사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영어를 배우는 배경은 아직 삶을 배워가는 어른들의 모습의 축소판처럼, 언어라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 응축된 형태처럼 보였다. 표지에 이 단편의 제목이 쓰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가는 결국 돈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더 비중 있게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아직 삶을 배워가는 중이라며, 남에게 건네는 다정한 안녕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진 언어라며. •해석이란 모름지기 독자 스스로 해내야 할 몫이다. 하지만 해설을 안 읽자니 책을 끝까지 소화하지 못한 듯 찝찝하고, 막상 다 읽은 뒤에 내 생각을 도출하려 하면 해설의 무지막지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내린 효율적인 독서법은 내 생각을 먼저 끝낸 뒤에 해설을 읽는 것이다. 그럼에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책을 고스란히 음미하던 감정선이 끊기고 강제로 '스터디 모드'로 전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소설을 쓰게 된다면, 책 뒤편에 해설을 싣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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