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습작
무제
·9. 10.·조회 63·댓글 1·좋아요 1
첫째 기록.
세상은 넓고 이질적인 존재들이 난무합니다. 제가 나고 자란 땅 위에서도 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판을 치더군요. 그것들을 결코 두렵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서글픈 물건짝들에 불과하니까요. 그 내막을 알고 나니 모든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습니다.
둘째 기록.
인간의 쳇바퀴 같은 삶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 애에게 왜 그리 목매냐 물어본다면, 글쎄요. 어디가 좋냐 물어본다면, 글쎄요. 이유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있으면 존경이라는 옛 위인이 남긴 말이 있는데, 저는 그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셋째 기록.
저는 그 애가 어딜 가든 따라갔고 그 애는 그런 절 몹시 귀찮아했습니다만, 그 애의 그런 모습마저 사랑 넘쳐 보였습니다. 그 애는 저를 홀대하다가도 제가 안쓰럽게 보였는지 간혹 가다 한 번씩 온정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열이면 아홉이 냉랭하던 그 애는 열 중 하나가 아홉을 잊게 만들 정도로 살가웠습니다. 그 다정을 알고 난 후로 어쭙잖은 동정 따위는 성에 차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록.
나는 사계절 내내 너를 앓아. 앓을수록 닳아서 이윽고 네가 있던 자리에 한 줌의 모래 먼지가 쌓이게 되면 혹은 공중에서 분해되어 맨땅이 드러나게 된다면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입을 맞출게. 쓸데없이 겁만 많아 네게 폐만 끼치는 나이기에 나는 매일 용서를 빌미로 너를 찾겠지. 나는 너로 인해 숨 쉬었고 내 고질적 성격 탓에 올바른 길에 들지 못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너는 시궁창 같던 내 인생을 구제해 준 구세주임과 동시에 인간의 온정을 알려 준 구원자니까. 그래서 미안해. 우리 죽어서는 만나지 말자.
댓글 1
·9. 10.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이 한 사람에게 구원을 찾았지만, 결국 그 사랑마저 죄책감으로 남아버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