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완독

독서 메모
그 수업에서 다루는 지식이 학생들의 삶의 어느 부분에 맞닿아 있어야 하고, 어떤 지식에 대해 학생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확장시킬 여지를 던져줘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 그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스펙트럼에서라면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세상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다보면 초라해지기 쉬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을 일으켜세울 수 있습니다.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죠. 스토아 학파가 인간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도덕적 평등을 주장하였다면, 그리스도교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는 기존의 종교와 전통 문화와는 다른 형태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즉 신의 자녀로서, '신의 모상'으로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구의 역사는 그에 대한 반전으로 끊임없이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라는 가정하에 인간 이성으로 인간과 법, 철학과 윤리를 찾아갔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유럽에서는 세속주의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그 여정은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자연법을 통해 인간에게 통용될 수 있는 합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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