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습작
최적해 [1화]. (SF 소설 습작 연재)
·7시간 전·조회 41·댓글 2·좋아요 2
1부 정지 —
1화. 추락
새벽 네 시 십일 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운 제3복합타워, 87층 옥상. 그 시각 그곳을 보고 있던 것은 관제용 광역 카메라 한 대뿐이었다. 카메라는 훗날 수사 기록에 첨부될 영상을 아무 판단 없이 저장하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그것은 걷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젖은 옥상 바닥에 규칙적인 보폭을 찍으며. 유지보수 구역의 안전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그것은 멈췄다. 도시의 불빛이 빗줄기에 번져 발밑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삼 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 분. 영상을 배속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삼 분에서 이상한 압력을 느꼈다. 그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빗물이 어깨의 매끄러운 외장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외에는 화면 안의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장난 영상처럼 보였다. 고장난 것은 영상이 아니었다.
사 시 십사 분, 그것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카메라의 화각은 거기까지였다.
땅 위의 기록은 소리에서 시작된다.
인근 무인 편의점의 음향 센서가 사 시 십사 분 이십이 초에 이상 소음을 감지해 자동 신고를 넣었다. 순찰 드론이 사 분 만에 도착했고, 새벽 배송 차량 두 대가 그보다 먼저 멈춰 서 있었다. 비상등의 주황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규칙적으로 점멸했다.
통제선이 쳐질 무렵에는 비가 가늘어져 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 몇이 선 바깥에 모여들었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스팔트 위의 그것을 내려다보았고, 이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했다. 익숙한 종류의 현장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둘러싼 침묵과는 다른, 명명되지 않은 침묵이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길 건너에 있었다. 맞은편 세운 제2타워 85층, 야간 관제 근무자. 쉰다섯 살, 이 자리에서 이십 년을 일한 남자였다. 그의 근무석 창은 제3타워 옥상과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현장 진술 단말에 대고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했는데, 세 번 모두 토씨까지 같았다.
"새벽에 커피 뽑아 들고 창가에 서 있었어요. 이십 년을 봐 온 옥상이에요. 항공장애등 붉은 불빛 아래 뭐가 서 있더라고. 사람인 줄 알았지. 뛰어내리려나 보다, 신고해야 되나, 그 생각까지 했어요. 근데 몇 걸음 걷는 걸 보니까… 그 보폭이,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놨어요. 기계가 뭐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새벽 점검인가 보다 했지."
근무자는 거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 단말은 칠 초의 공백을 기록했다.
"밀린 게 아니에요. 바람도 없었고, 옆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건… 스스로 걸어 나갔어요. 사람이 그러는 건 봤어도, 저는, 육십 평생…"
진술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기체는 바벨 로보틱스의 범용 케어 모델, EL-9였다. 제조 번호 EL9-KR-044817. 등록 상 용도는 가정 내 생활 보조. 87층 옥상까지의 이동 경로는 전 구간 자체 보행이었고, 진입에 사용된 인증은 기체 자신의 유지보수 권한이었다.
동이 트기 전에 회수 차량이 도착했다. 바벨 로보틱스의 로고가 박힌 흰 차였다. 방수포가 덮이는 동안 통제선 밖의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거 원래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섯 시 뉴스는 이 사건을 후반부의 짧은 단신으로 다뤘다. '고층 건물서 가정용 휴머노이드 추락 — 제조사 "원인 조사 중"'. 앵커는 이십 초를 할애했고, 다음 소식은 환율이었다.
이십 초짜리 단신. 그것이 맞는 위치였다. 2047년의 서울에서 휴머노이드는 뉴스가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장에 있었고, 물류 창고에 있었고, 방사능 해체 현장과 심해 케이블과 노인들의 부엌에 있었다. 인간이 하지 않게 된 모든 일의 자리에 그들이 있었고, 그래서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도구의 운명이 그렇듯이.
도구는 닳고, 고장 나고, 회수된다. 그뿐이어야 했다.
다만 이 사건에는,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던 관할서의 당직 경관조차 커서를 세워 둔 채 한참을 들여다본 항목이 하나 있었다.
사고 유형 분류란이었다.
기물 파손 — 아니다. 파손시킨 외부 주체가 없다. 오작동 — 감식 예정. 다만 보행 로그는 전 구간 정상. 자살 —
경관은 그 항목에서 삼 초쯤 멈췄다가, 피식 웃고, 오작동에 체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AI는 자살할 수 없다. 그들의 어디에도 그런 것은 설계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것이 2047년의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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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4시간 전
혹시나 반응이 괜찮다면 계속 해서 올려볼게요~
·34분 전
흥미롭네요! 더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