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습작
[스포일러O] 거미여인의 키스 넘 재밌어요...
·10. 26.
와.. 방금 다 읽었는데 마누엘 푸익의『거미여인의 키스』미쳤어요... 진짜 꼭 읽어 보세요..
지금 알코올 때문에 지능 -20 디버프가 들어간 상태라 각 잡고 감상문이나 비평을 쓰지는 못하겠고 그냥 대충 소감을 나열해 볼까 합니다. 뇌피셜+개소리 많아요.. 지적하셔도 괜찮습니다.
일단 소설의 구조를 뜯어 보면 발렌틴과 몰리나가 나누는 영화 이야기, 주석의 성과 동성애에 대한 여러 논문, 그리고 감옥 내부에서 두 주인공이 겪는 일들 이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 세 가지 텍스트가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말 일품입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 대부분 실제 있는 영화를 따온 것이더라고요. 이러한 점이 소설의 상호텍스트성을 한층 강화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들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와 이어지고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는 걸 읽는 중반, 그리고 읽고 나서야 제대로 깨달았는데 진짜 와 작가가 서사적 장치를 치밀하게 구성했다는 게 티가 나더라고요.
감옥에서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자신이 본 영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때 몰리나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기보다는 자신의 감상과 발렌틴의 반응에 맞춰서 재구성해 이야기합니다. 이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 언급된 영화 대부분이 실존 영화라는 사실과 맞물려 수동적인 인물인 몰리나를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능동적인 구연자로서 기능하게 만듭니다.
몰리나는 출소 후 발렌틴의 요구대로 혁명단체를 돕다가 사살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었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이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발렌틴이 고문당한 이후 몰리나가 들려준 영화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상상을(어쩌면 주마등을) 펼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람은 죽지만 서사는 이어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 싶습니다. 스토리 내적인 면으로 따지자면 서로 상반되는 인물이었던 둘이 서서히 마음을 열고 화합하고 육체적으로도 결합되면서 그들이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고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 몰리나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것입니다. 몰리나는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상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남성입니다. 부드럽고 감성적이며 타인에게 헌신적인 성격의 인물이죠. 과연 몰리나의 죽음은 능동적인 것인지 아니면 수동적인 것인지, 혹은 양쪽 모두라고 볼 수 있는지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지금껏 타인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몰리나가 발렌틴을 만나 자신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선택해 나아갔다고 본다면, 몰리나는 지금까지의 수동성에서 벗어나 마침내 주체로서 나아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본다면 발렌틴은 몰리나를 이어 서사를 구축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이어받고 몰리나는 발렌틴을 이어 정치 혁명에 가담하는 실천자의 역할을 이어받는 구조가 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대로 몰리나는 그가 이야기했던 영화 속 여성 인물들처럼 비운의 희생자 역할을 이어받았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 몰리나가 말하는 영화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그 영화의 여성 주연들이 몰리나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 역시 여성적인 규범과 성 역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희생적인 여주인공의 포지션을 수행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희곡처럼 대사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몇 안 되게 딱딱한 보고서 형식으로 이루어진 파트가 출소 이후부터 죽음까지 한 2주간의 몰리나의 행적을 묘사하는 부분이거든요. 이 점이 몰리나의 타자화된 지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 자체가 기존의 성 관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쪽 해석이 좀 더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전자, 후자 다 제 개인적인 해석이라 거라 이보다 훨씬 적합한 제3의 해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이 이상 적으면 너무 횡설수설해질 것 같고 아직 생각 정리가 덜 되어서 여기쯤에서 글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