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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여러분께서 어렸을 적 좋아했던 책은 무엇인가요?

·10. 18.
제가 유년기였을 무렵에 부모님께서 어린이 전집을 굉장히 많이 사주셨는데 그중 세계의 전설과 민담을 다룬 동화책 전집을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어떤 오누이가 바실리스크를 무찌르는 내용의 유럽 전설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중2병이 많이 일찍 와서 유년 시절부터 흑마법이나 악마, 전사, 상상 속 괴물 등의 소재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돌이켜 보면 응애 시절에 미리 중2병이 온 게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쯤에는 고양이 전사들 시리즈랑 소년 셜록 홈즈 시리즈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소년 홈즈의 경우 작가가 느닷없이 연재 중단을 때려버려서 아직까지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되게 중요한 시점에서 끊어버렸는데 아직도 가끔씩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때의 취향 덕인지 중학생 때는 오리지널 셜록 홈즈 시리즈에 꽂혀서 전집을 다 읽었습니다. 지금은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무렵에는 추리소설에 꽂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도서부 활동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 박혀서 책 읽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맘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인간 실격을 읽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소설에 공감하기엔 다소 어린 나이였지만 요조의 절절한 고백이 너무나도 제 이야기 같아서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인간 실격은 몇 년에 한 번씩은 꼭 주기적으로 읽는 인생작이 되었습니다.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요조의 마음에 공감하기도 하고 요조를 한심하다 느끼고 비난하기도 하면서 그 책은 제 내면 한구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무렵쯤엔 봉사하던 동네 도서관에서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제게는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너무나도 센세이셔널하게 느껴져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저에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책이었습니다. 특히 인간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감각 기관과 뇌에 의해 재구성된 주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 무렵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몇 살 더 먹고 나서 그 주장은 아주 오래 전 칸트가 이미 던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다 지금 다시 읽으면 식상하고 얕은 이야기로 느껴질 것 같지만, 그 시절의 무지한 저에게는(사실 지금 역시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합니다) 책에서 전하는 내용들이 굉장한 지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고 그 무렵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라 거의 학업포기자가 되어 방에서 게임이나 하며 매일 시간을 죽이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책을 읽곤 했는데, 달과 6펜스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예술이 하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고집은 있으면서 영문 모를 수치심 때문에 정작 자기주장을 피력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런 길을 걷지 못했던 것이 크나큰 후회로 남아 있었거든요.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인생을 조여오고 있는 죽도록 괴로운 수치심과 그와 상반되는 비대한 자존심은 그 시절에도 저를 천천히 죽여갔고, 그랬기에 광기 수준의 열정과 실행력으로 가득한 스트릭랜드가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의 재능과 열정이 외부로 표출되는 데에 비해 저는 산월기의 주인공 이징처럼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짐승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뭔가 사담이 길어졌지만 달과 6펜스는 여전히 이루지 못한 이상과 꿈에 대한 미련으로 남아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현재는 조르주 바타유의 철학서와 소설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더 설명하자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듯해 이건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작가 추천글을 올리거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책이랑 참 오랜 기간을 함께 보내왔구나 싶은데도 여전히 문학이라는 게 낯설고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독린이구나 싶어서 슬퍼지네요. 그렇지만 딱히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니까 낙담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해했든 아니든 그냥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저 읽을 뿐인 거죠. 여러분께선 어린 시절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셨나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책이나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댓글 17

  • ·10. 18.

    ㅋㅋ 저는 이상하게 수호지를 진짜 좋아헀어요 ㅋㅋㅋ 삼국지도 아니고 수호지가 저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ㅋㅋ 성인되고 나서는 다시 본적은 없는데, 이 글을 보니까 지금 수호지를 보면 어떤 감성일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 *·10. 18.

      수호지.. 차마 엄두가 안 나는 어마무시한 분량이던데 대단하시네요

  • ·10. 18.

    저는 해리포터!! 아직까지 해리포터를 이길만한 책을 만나보지도 못해서 헤매고 있습니다 ㅜ

    • *·10. 18.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로만 봤는데 원작도 읽어 보고 싶네요

  • ·10. 18.

    저도 한때 채사장에 푹 빠져서 ㅋㅋ 팟캐스트 다 듣고 두번듣고 책도 다 찾아서 읽었었는데 ㅋㅋㅋ 반갑네요 ㅋㅋㅋ

    • *·10. 18.

      오 꽤나 열성적이셨네요. 전 저 책이랑 지대넓얕만 읽어 봤어요

    • ·10. 18.

      채사장 책 다 좋아요 ㅋㅋㅋ 열한 계단도 추천드립니다

  • ·10. 18.

    나중에 저도 자식한테 어린이 전집 꼭 사줘야겠다... ㅋㅋㅋ 조르주 바타유도 궁금하네요.. 나중에 꼭 한 번 따로 정리해서 올려주세요 ㅠㅠ

    • *·10. 18.

      어린 시절부터 독서하는 습관을 갖추게 된 건 부모님 덕이 큰 것 같긴 합니다. 부모님께선 책을 읽지 않으셨음에도 제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고자 이것저것 책을 사주셨으니까요. 바타유는 나중에 정리글 올려보겠습니다. 굉장히 호불호를 탈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 ·10. 18.

    저는 마지막 수업이요 어렸을 때라 역사 배경을 하나도 몰랐음에도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았어요

  • ·10. 18.

    이문열 삼국지, 오즈의 마법사, 셜록홈즈, 반지의 제왕, 그림형제 동화

  • ·10. 19.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who책 좋아햇어요 ㅋㅋㅋㅋㅋ 페이커도 봤고 방탄소년단이랑 조성진 피아니스트처럼 한국 인들, 헬렌 켈러 같은 외국 인물들까지 전부 읽어봤어요

  • ·10. 19.

    초 1 : 그리스 로마 신화, 웃소 who, 고양이해결사 깜냥 초 2 : 5번레인 초 3 : 푸른사자와니니 초 4 (현재) :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 오세이사, 5번레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투바투 who,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 푸른사자와니니, 우리반 시리즈 좋아했었어요!!

  • ·10. 22.

    그리스로마신화를 아주 좋아했어요 외울 정도로 봐서 맨날 부모님께 얘기해주고…

  • ·10. 26.

    이상하게 어렸을 때 읽고 계속 머리에 남아 있는 책들이 있죠! 저는 1. 투명인간-하버트조지웰스 2. 나무-베르나르베르베르 3. 로빈슨 크루소 살아남기 시리즈

    • ·4일 전

      로빈슨 크루소 ㅋㅋㅋㅋㅋ 쌉명작이죠 ㅋㅋㅋ

  • ·6일 전

    저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