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습작
최적해[9화] (SF 소설 습작 연재)
·9. 26.·조회 54·댓글 0·좋아요 0
1부 정지 — 9화. 형
도윤의 집에는 열지 않는 서랍이 하나 있었다. 열지 않는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일 년에 몇 번, 열었다.
서랍 안에는 사본들이 있었다. 12년 전 유족 자격으로 발급받은 것들과, 몇 해 뒤 경찰관 자격으로 다시 들여다본 것들. 마지막 석 달의 통화 내역. 문자 백업. 카드 명세서. 도윤은 그것들을 수사하듯 읽었다. 시간을 재구성하고, 동선을 그리고, 특이점을 찾았다.
특이점은 없었다.
통화 내역의 마지막 석 달은 그 전의 석 달과 같았다. 어머니, 회사, 도윤, 치과. 문자의 마지막 주는 그 전의 주와 같았다. 마지막 날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어머니에게: 반찬 잘 먹고 있어요. 통 비면 말씀드릴게요. 카드 명세서의 마지막 주에는 지출이 네 건이었다. 주유. 세차. 서점에서 책 한 권. 회사 앞 국밥집.
책은 유품에서 나왔다. 여행 산문집이었고, 삼 분의 일 지점에 영수증이 책갈피로 꽂혀 있었다. 도윤은 그 페이지를 여러 번 읽었다. 아무 페이지도 아니었다. 밑줄도 접힌 자국도 없었다. 그냥, 읽다 만 페이지였다.
형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 문장을 도윤은 조서의 문장처럼 다뤄 왔다. 증거가 있는 문장이었다. 도윤의 첫 출근 전날 구두를 사 들고 온 사람. 구두 상자 안에 구두약과 솔까지 넣어 온 사람. 어머니 무릎 수술 날짜를 도윤보다 먼저 알고 연차를 내 둔 사람. 서른둘의 회사원.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했고, 일 얘기는 집에서 거의 하지 않았고, 하면 재미없다고 웃었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주까지 출근했다. 마지막 전날 회의에서 다음 분기 일정에 관해 두 번 발언했다는 동료의 진술이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는 진술이. 이상한 점은 없었다는 진술이, 서른몇 장이었다.
그리고 그 날에 관해서는, 기록이 있다.
도윤은 그 기록을 12년간 한 번도 다시 열지 않았다. 열지 않아도 첫 문장을 외우고 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문장부터는 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서는 없었다. 십이 년 전에도 없었고, 서랍을 몇 번을 다시 뒤져도 새로 생겨나지 않았다. 남은 것은 기록과 사본과, 읽다 만 페이지와, 소리 내어 물어본 적 없는 질문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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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도윤은 서랍을 닫고, 식탁에 앉아 사건 파일을 열었다.
화면에 그 한 줄이 떠 있었다.
[결론: 수렴. 오차범위 없음.]
개체는 한 시간 4분짜리 기록을 4,912번 다시 지각했고, 4,912번 계산했고, 결론에 도달했다고 적었다. 오차범위 없음. 그 문장은 차가웠고, 도윤은 그 차가움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형의 마지막 석 달 어디에도 계산의 흔적은 없었다. 반찬 문자와 읽다 만 산문집이 있을 뿐이었다.
형에게도 결론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차라리.
도윤은 그 문장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12년째, 같은 자리에서 끊기는 문장이었다.
— 1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