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완독

독서 메모
<노찬성과 에반> - 할머니, 용서가 뭐야? 아이스박스 캐리어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찬성이 물었다. -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p.43 <침묵의 미래>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과 의심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결정이 하도 고유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입을 잘못 떼었다가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정과 말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당할지 모르니까. p.128 아기의 울음소리. 천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천여 명의 인간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한동안 단지 내에 생생하게 울려퍼졌다. p. 139 <풍경의 쓸모>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플래시 소리는 낙하산 펴지는 기척과 비슷해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살았다는 안도를 줬다. 운전자를 덮치는 에어백마냥 푹신한 충격을 줬다. … 어머니가 “펑!” 불빛을 터뜨리면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풍경이 하얗게 날아갔다. 나는 자주 눈을 감았고 가끔 그 증발이 아까워 환하게 웃었다. 낙하산 줄을 잡아당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 할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 p.150 - 공정한 척 우아하게 비판하지만 실은…… 곽교수가 비정하게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 몸살이 날 정도로 부러운 거지. p.163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나왔다. p.173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 테니까. p. 190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고요하고 어둑한 안방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당신과 같이 만든 냄새였다.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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