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습작
최적해[8화] (SF 소설 습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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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정지— 8화. 반복 재생
파편 복구 결과 보고는 감식센터 제2분석실에서 열렸다. 사건 21일째. 참석자는 감식관, 한서인, 도윤. 이번에는 바벨 쪽 참관인이 없었다. 참관 신청이 없었다고 했다.
복구된 것은 소거된 72시간 이전, 약 3주 분량 인지메모리의 파편 11%였다. 감식관은 그 11%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같은 것만 나옵니다."
화면에 목록이 떴다. 데이터 블록 하나의 로드 기록이 시간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목록은 스크롤을 여러 번 내려도 끝나지 않았다.
"블록 식별자 기준으로 동일 데이터입니다. 3주 간 총 4,912회 로드. 하루 평균 230회. 개체가 대기 상태에 들어갈 때마다, 그러니까 다른 할 일이 없어지는 순간마다 이걸 불러왔습니다."
"그 블록이 뭡니까." 도윤이 물었다.
감식관은 잠깐 한서인을 보았고, 한서인이 대신 화면을 넘겼다.
> 블록 원본: 2047. 1. 12. 01:37 ~ 02:41 지각 기록
>
> 01:37:12 — 이용자 심박 이상 감지
> 01:37:14 — 응급 프로토콜 개시. 119 자동 신고
> 01:38:02 — 이용자 발화 (음성 데이터 파편화 손상 — 변환 불가)
> 01:41 ~ 02:12 — 이용자 곁 대기. 위치: 이용자 우측 0.5m 고정
> 02:13:07 — 구급대 현장 도착
> 02:41:30 — 사망 판정 수신
> 02:44:00 — 응급 프로토콜 종료
강 씨의 임종 기록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 사 분.
개체는 그것을 4,912번 다시 지각했다.
"음성은 복구가 안 됩니까." 도윤이 물었다.
"손상이 아니라 마모에 가깝습니다." 감식관이 말했다. "같은 블록을 이렇게 반복해서 읽으면 저장 매체에 물리적으로 부하가 갑니다. 제일 많이 읽힌 지점부터 닳아요. 1시 38분 구간이… 제일 많이 닳았습니다."
강 씨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그 말을 가장 많이 재생한 존재 안에서 가장 먼저 지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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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가 전부가 아니에요." 한서인이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매 로드 직후에 이게 붙어요."
로드 기록 뒤에 고밀도 연산 구간이 이어져 있었다. 4,912회, 매번. 연산의 구조는 수식 파편으로만 남아 있었다.
"목적함수 재평가 연산으로 보여요. 개체가 자기 행동의 우선순위를 계산할 때 쓰는 구조랑 골격이 같아요. 그런데 변수 정의부가 파편 밖이라, 무엇을 계산했는지는 아직 몰라요. 무엇을 넣고 돌렸는지만 알아요."
"뭘 넣었습니까."
"저 한 시간 사 분을요. 4,912번, 매번, 전부."
분석실은 잠깐 조용했다. 감식관이 마지막 페이지를 띄웠다.
"복구된 파편의 시간상 마지막 지점입니다. 소거된 72시간에 진입하기 직전, 그러니까 낙하 나흘 전 밤이고요. 마지막 로드, 마지막 연산 뒤에… 이게 있습니다."
수식이 아니었다. 로그 형식도 아니었다. 개체가 자기 메모리에 남긴 문자열 한 줄이 화면 가운데 떠 있었다.
****[결론: 수렴. 오차범위 없음.]****
"이 파일 전체에서," 한서인이 낮게 말했다. "기계어도 수식도 아닌, 사람의 말로 쓰인 문장은 이게 유일해요."
무엇이 수렴했는가.
그 답이 있어야 할 72시간은, 일곱 번 덮어써진 채 비어 있었다.
— 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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