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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해 [4화]. (SF 소설 습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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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정지 4화 바벨 로보틱스 본사는 사건 현장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1층 로비에는 케어 모델 두 대가 서 있었다. 방문객이 들어오면 고개를 십오 도쯤 기울이고 이름을 물었다. 도윤이 이름을 말하자 한 대가 대답했다. "차도윤 형사님. 십 층 제2접견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시는 길에 비를 맞으셨습니다. 수건을 준비해 드릴까요." 도윤은 괜찮다고 말했다. 개체는 고개를 원위치로 돌렸다. 원위치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일 초였고, 그 사이에 표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접견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대외협력본부 상무 송기훈, 그리고 법무팀 이진섭. 이진섭은 사흘 전 감식 설명회에 참관인으로 앉아 있던 남자였다. 그때와 같은 색 정장이었다. 송기훈은 명함을 건네고, 커피를 권하고, 유감을 표했다. 유감의 대상은 사건이 아니라 도윤의 수고였다. "저희 쪽 잠정 결론이 나왔습니다. 형사님 쪽 종결 서류에 붙이시면 됩니다." 이진섭이 문서철을 밀어 놓았다. 표지에 스물두자 짜리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 EL9-KR-044817 낙하 사고 원인 분석 보고서 (제조사 잠정) 사고 개요 — 2047년 4월 17일 04시 14분, 세운 제3복합타워 옥상에서 당사 케어 모델 EL-9 1기 낙하. 원인 판정 — 국지성 뇌우에 동반된 유도 서지에 의한 균형제어계 일시 오류. 근거 — 당일 03시대 수도권 뇌우 예보 발효. 고층 구조물 상부는 직격이 아니어도 유도 전류에 노출될 수 있음. 균형제어계 일시 오류 시 보행 중 자세 유지 실패 가능. 인적·물적 2차 피해 — 없음. 조치 — 해당 개체 폐기. 동일 로트 12기 자율 점검 완료. 리콜 사유 해당 없음. 상기 내용에 이의 없음을 확인함. 수사기관 확인란 ____________________ ---------------------------------------------------------------------------------------- 서명란은 문서 맨 아래 오른쪽에 있었다. 볼펜은 이미 문서 위에 얹혀 있었다. "낙뢰 관측 기록은 없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반경 삼십 킬로미터 안에 방전이 없었다고 감식 결과지에 나왔습니다. 부록 3이었죠." "그래서 '직격'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이진섭이 말했다. "유도 서지는 관측망에 남지 않습니다." "남지 않는 것을 원인으로 쓰신 겁니까." "남지 않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쓴 겁니다. 균형제어계 오류는 그중 가장 개연성 높은 가설이고요." 이진섭의 말투는 사흘 전 감식관과 비슷한 속도였다. 다만 감식관은 결과지를 읽었고, 이진섭은 읽지 않고 말했다. 송기훈이 웃음을 조금 보탰다. "형사님, 저희가 매년 출하하는 게 십일만 대입니다. 백만 분의 몇은 어디서든 나옵니다. 그게 하필 팔십칠 층이었던 거고요. 저희로서도 손실입니다. 한 대에 사천만 원이에요." "균형제어계 오류라면," 도윤이 말했다.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삼 분간 서 있던 것은 뭡니까." "대기 상태입니다. 오류 발생 시 자기진단 루틴이 돕니다." "자기진단 루틴이 연산계 전력을 상한선까지 씁니까." 이진섭이 처음으로 이 초쯤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 초 뒤에 나온 대답은, 그건 감식 소관이라는 것이었다. ---------------------------------------------------------------------------------------- 도윤은 볼펜을 집지 않았다. 대신 안주머니에서 A4 두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았다. 왼쪽은 세운 제3복합타워 시설관리팀에서 받은 옥상 출입문 도어 로그였다. 04시 03분, 정상 인증, 유지보수 등급. 오른쪽은 바벨 로보틱스 원격인증서버 발급 이력 조회 회신이었다. 같은 시각, 같은 개체. 「해당 기간 발급 이력 없음 — 보존기간 경과에 따라 자동 삭제됨」 "케어 모델의 유지보수 권한은 귀사 서버에서 건별로 발급됩니다. 발급 요청자, 시각, 사유가 남죠." 도윤은 오른쪽 종이를 손끝으로 밀었다. "그 개체는 04시 03분에 그 권한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발급 기록은 있었습니다." 송기훈은 종이를 보지 않았다. 이진섭이 보았다. "보존기간이 얼마입니까." "…이 년입니다." "사건은 사흘 전입니다." 접견실 공기청정기가 팬 속도를 한 단계 올렸다. 로비에서 케어 모델이 다음 방문객의 이름을 묻는 소리가 십 층까지 들릴 리는 없었지만, 도윤은 잠깐 그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작동이라면," 도윤이 말했다. "왜 옥상 출입 기록을 지웠습니까?" 이진섭은 대답하지 않았다. 송기훈이 대신 웃으며 말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형사님. 저희도 궁금하네요. 도윤은 서명란이 빈 문서철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가로지를 때, 아까의 케어 모델이 고개를 십오 도 기울이고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밖에 아직 비가 옵니다."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그 개체를 삼 초쯤 보았다. 개체는 그 삼 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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