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야기
노인과 바다에서 정작 중요한 건 상어가 다 뜯어간 뒤였다.
·3일 전·조회 206·댓글 6·좋아요 5
노인과 바다를 처음 읽을 때는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배웠고요. 그런데 최근 다시 읽으며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산티아고는 84일간 고기를 못 잡다가 거대한 청새치를 낚습니다. 사흘 밤낮의 사투 끝에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상어들이 다 뜯어가고, 항구에 도착했을 땐 뼈만 남죠. 여기서 조금 흥미로운건 노인의 반응입니다. 그는 절규하지 않아요. 담담히 돛대를 메고 언덕을 올라 오두막에서 잠듭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말하죠. 다음엔 같이 나가자고.
젊을 때 저는 이 결말이 허무했습니다. 뼈만 남았는데 뭐가 승리인가 싶었죠. 그런데 다시 읽으니 헤밍웨이는 정확히 그 지점을 겨냥한 것 같습니다. 결과물은 언제든 상어에게 뜯길 수 있다. 그러나 사투의 시간 자체는 누구도 뜯어갈 수 없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몇 년을 갈아 넣어 준비한 것들이 무산되고, 공들인 관계가 끝나고. 뼈만 남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때 우리에게 남는 건 결과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한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
노인이 마지막에 사자 꿈을 꾸는 이유도 그래서일 겁니다. 그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완주한 사람이니까요.
고전들은 이래서 좋네요, 읽어도 읽어도 다시 읽어도 느낌이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서, 항상 읽을 가치가 있네요.
댓글 6
·3일 전
결과물은 뜯겨도 사투의 시간은 못뜯어간다... 이말이 되게 좋네요. 글 저장하고, 팔로우박습니다.
·3일 전
취준 3년째 아무것도 안되고 멘탈 나가 있었는데, 이 글 보니까 좀 울컥하네요.. 뼈만 남았어도 바다에 나갔던건 나라는거.. 저도 얼른 항해를 끝내고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3일 전
그 시간들이 어디 가지 않습니다. 노인의 84일도 헛되지 않았기에 청새치를 만난 거라고 생각해요. 응원합니다.
·3일 전
원문에서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이 문장이 정확히 그 주제죠. 파괴(결과)와 패배(태도)를 구분한거. 노인과바다 진짜 좋죠. 저도 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2일 전
아니 근데 솔직히 다르게 보면 노인이 무리해서 너무 멀리 나간게 문제 아닌가...
·2일 전
인정합니다. 물론 노인이 무리해서 멀리 나간게 맞죠. 다만, 무리와 도전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든 도전들은 크고작은 무리함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요. 무리하지 않고 안전한 범위안에서만 하는 것을 우리는 도전이라고 부르지 못하겠죠